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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한줄기 prologue. 지성과 영성

인류는 지성이라는 거대한 유산을 남기고 있다.

지성은 지식이라는 실용적 학문, 기술적 방법론 등 비교적 명백한 논의를 통해 축적되는 앎의 계승이다.

 

하지만 지성이라는 거대한 유산 뒤에 남아 마치 그림자처럼 실체인 듯 실체가 아니라 여겨지는 영역이 있다.

 

바로 영성이다.

 

영성은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기에 누구나 명백하게 납득할 수 있는 논의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 할지라도 논의를 통해 도출되는 결론들은 충분히 인류에게 이로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는 영혼의 실제 존재 유무와는 무관하게 영성에 관한 인식들로 인해

삶 속에서의 심리적, 정신적 차원의 실제 작용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 곳에서 논의하는 영성이란 반드시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전제로 삼지는 않는다.

심적 작용의 결과를 놓고 논할 때 영혼의 실존 유무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성과 영성의 논의 방식을 구분해보자면 이렇다.

 

지성의 차원에서는 인간이 사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의한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보존과 번식의 본능을 목적으로 움직인다. 인간 또한 번식본능을 가진 생명체고, 본능의 발현이 발달된 전두엽과 변연계로 인해 더 복잡화된 양상을 띠어 사랑이라는 형태의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것 정도로 인식된다.

 

이에 대한 이견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생물은 왜 그런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어떻게 갖고있을 수 있는가?

 

당연히 이에대한 대답도 미립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결과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이마저 끝까지 관찰해보면 그 미세한 영역들의 운동을 유발시키는 에너지가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에너지는 물리적 차원의 작동방식을 관통한다.

나아가 그런 에너지 및 관측 결과들은 결국 전부 상대적이라는 것이 현대과학의 결론이기도 하다. 

어째서, 어떻게 그런 상대적인 힘들이 정교하게 작용되어 이렇게 세상이 구현되었을까?

이에 대해서, 그리고 이 이상으로 끊임없이 근본을 탐구해보고자 하는 영역을 영성에 관한 논의라 하겠다.

지식의 차원에서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열린마음으로 사고해보려는 인지체계를 이야기 한다.

 

물론 이런 의문들만으로 영혼은 존재한다고 귀결시킬 수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도 예로부터 이에대해 제시되는 여러가지 가설에는 영혼이란 것을 매개로 설명되는 부분이 많기에 영성이라고 할 뿐이다.

 

오늘날 인류는 이런 영성에 대한 논의를 과거만큼 집중해서 주류 논의거리로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해소되는 부분이 많기에 필요성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사회는 영성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미지의 영역에 대한 걱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용맹한 자라도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은 자는 이 세상에 없다.

유감이지만 이런 모두가 가진 공통적인 두려움을 이용해 궤변을 펼치는 자들이 이 세상엔 존재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는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위해, 교묘한 궤변들에 빠져 그릇된 길로 나아가지 않기 위해 영성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이 곳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명쾌한 해답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보다 주체적이고 선명한 사고를 하도록 돕는 의식들을 제시할 것이다.

 

인류에게 영성이라는 커다란 한 줄기의 새로운 유산이 세워지는 패러다임 전환의 첫 걸음이 되기를 바라며 한줄기 집필을 시작한다.